립유

[도서] 책상은 책상이다

삼토 2012. 11. 2. 21:15

 


책상은 책상이다

저자
페터 빅셀 지음
출판사
예담 | 2001-10-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더이상 아이를 부양할 의무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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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새내기의 희망과 포부가
혼자라는 외로움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격차'로 인한 소외감 속에
서서히 희석되고 있을 때 쯤.

그 날도 어김없이 혼자서 밥을 먹고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책 냄새를 킁킁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렇게 바래져 가는 책들 사이에서 78년에 <문장>에서 펴 낸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제목이 신기해서 꺼내봤을 뿐이고
책을 편 후에는 80년대 이전에 나온 책인데도 가로로 인쇄되어서 마음에 들었고
넘겨보니 삽화가 있어서 즐거워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약 25년을 살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그 책이
내 손에도 들려있다는 점이었다.

 

부제 '어른들을 위한 童話'

약간 좀머씨 이야기를 접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그보다 불친절하고 유머러스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어린왕자에 좀 더 가까웠다.

상식에 벗어나는 사람들의 짤막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에피소드들로 구성된다.
화자는 그들을 동정하지도 조롱하지도 않고 객관적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마치 '브로콜리 너마저'의 담담한 목소리가
상처투성이 내면을 힐링하는 것처럼
그런 담담하고 지극히 서술적인 어조가 마음을 울렸다.

아마 이 책을 읽은 후엔 곱씹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됐든.

 

 

9년 전에 읽었던 그 책이 그리워서 자료실로 올라갔다.
포근히 날 반기는 우리학교 도서관의 책 냄새.
그 익숙한 냄새를 지나 녀석과 다시 만났다.

 녀석은 9년 동안 누렇던 책장이 갈색이 된 것만 빼면 달라진 게 없었다.
책장 한켠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늙어서 정신이 없는 조부도 한 때는 꿈을 지닌 청년이었다는 게
마음이 아파서였을까,
아니면 9년 전과 현실의 길목에서 돌아갈 수도 없는 나날을 꿈꾸는 내 모습이
처량해서였을까.

시간은 어찌도 이렇게 잘 간단 말이냐.